google-site-verification=8qlupJPyCuAd4GpDzTbPZX2i41FXDse3z7JWc6dlZak 이제는 사라져간 어린 시절의 전통혼례 그리움으로 남았네!!!

이제는 사라져간 어린 시절의 전통혼례 그리움으로 남았네!!!

2024. 4. 14. 12:56문화유적을 찾아 떠나는 힐링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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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김해에 전통 결혼식이 있어 가면서도 새삼 옛시절이 생각난다

원래 큰 집은 8남매가 모여살던 대식구였다.

거기다 큰아버지 아버지 숙부님이 차례대로 결혼을 했으니

손주들까지 합치면 족히 20명이 넘는 대식구였다.

아 그리운 할머니

장정들은 모두 논과 밭으로 일하러 나가면 할머니는 남은 어린 자식들과 손주들을 모두 돌봐야 한다

정말 손주 하나하나 챙긴 정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구나

없는 살림에 하나라도 챙겨서 손주들 먹여햐 하는 심정은 이제는 알 수 있다.

 

큰고모 작은 고모 큰집 누나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멀리 있는 친척들로 집안은 웃음꽃이 핀다

동네 사람 모두 모여 돼지도 잡고 솥뚜껑에 전도 부치고 야단법석이다

그러면 어린 우리들은 어머니에게 살짝 다가가서 음식을 달라고 조른다

어머니는 여기오면 절대 안된다고 하면서 밖에서 놀라고 한다.

그렇게 혼을 내고 어머니는 만들고 있던 음식을 입에 넣어 주고 빨리 가라고 한다.

 

 

전통결혼식이 열리면 일가친척뿐만 아니라 아랫동네 옆동네에서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결혼식은 모두의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곱게 차려입은 새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발디딜 틈이 없었다.

꼬맹이 들은 어른들 틈을 비집거나 어머니 품에 안겨 결혼식을 지켜 보았다.

결혼식은 왜 이리 길고 지루한지 우리들은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떡국과 음식 먹는 즐거움이다.

당시에 모두 가난한 시절이라 누구나 잔치날은 허기진 배를 채우곤 하였다.

그리고 움식이 조금 남으면 조그마한 보자기에 담아 오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전통 결혼식 중에서 무시무시한 것이 생각난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신랑의 발바닥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다

거꾸로 대들보에 매달고 발다닥을 때리면서 신부가 와서 애원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것이 잘못되어 불상사가 발생도 하곤 하였다.

어린 우리들은 숨죽여 보면서 아무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우리집에서는 발바닥때리기를 무사히 넘기고 모두 한 가족이 되었다.

파랑눈을 가진 독일신랑과 결혼하는 한국의 신부가 새삼스럽게 꼭 전통혼례를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

독일은 아직도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을 가지고 후손들에 물려주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너무도 허망하게 없어져 버린 우리의 전통혼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영원히 가져올 수 없는 역사적 유물로 남아 있어 서글픔이 앞선다.

조금 불편함을 감내하고서라도 기꺼이 민족의 고유한 풍속과 전통을 후손들에 물려 주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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